살다 보면 늘 눈에 보이지만 외면하게 되는 공간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방 한 켠의 작은 서랍장이 그랬습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안을 열면 버리지 못한 물건들로 가득 찬 혼란의 상자였죠. 늘 마음 한 켠에 ‘언젠간 정리해야지’라는 생각만 하면서 미뤄왔던 그 서랍을, 어느 날 갑자기 비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정리를 하며 느꼈던 감정은 단순히 공간을 정돈하는 것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정리의 물리적 행위가 마음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공유해보려 합니다.
정리는 단순한 행위 같지만, 그 안에는 많은 감정과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방치했던 서랍 하나를 열면서, 우리는 내면의 묵은 마음과 마주하게 됩니다. 정리는 삶의 흐름을 바꾸는 사소한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1. 꺼내기 전까지는 몰랐던 감정의 무게
서랍 정리를 결심한 건 아주 평범한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고, 괜히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어본 서랍 속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고 모아둔 각종 케이블, 고장 난 시계, 오래된 티켓, 굳어버린 펜…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물건의 양보다, 그 안에 담겨 있던 기억들이었습니다.
정리를 하려던 의도와 달리, 점점 감정을 되짚는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버릴지 말지 고민하게 만드는 물건 하나하나가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전 친구에게 받은 편지, 다 읽지 못한 책갈피가 끼워진 책, 그리고 한때 소중했던 사람과의 사진. 물건은 그대로인데, 나는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특히 한 노란색 노트는 몇 년 전 불안했던 시절을 버텨내던 일기장이었습니다. 다시 펼쳐보니 그 시절의 혼란스러움과 외로움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고, 동시에 지금의 내가 훨씬 더 단단해졌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정리는 단순히 물건을 비우는 게 아니라, 나 자신과 마주하는 감정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익숙한 것을 놓는 건 쉽지 않지만, 그 안에서 과거의 나와 자연스럽게 작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예상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2. 정리라는 ‘결정’이 가져다준 해방감
서랍을 정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물건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버릴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건 언젠가 쓸지도 몰라’, ‘이건 선물 받았던 거니까’라는 이유로 몇 년째 그대로 있던 물건들을 손에 들고,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스스로 기준을 하나 정했습니다. “지금의 나에게 의미가 없다면 보내자.” 이 단순한 원칙 하나가 놀라울 만큼 정리를 수월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버리다 보니, 눈에 보이는 공간뿐만 아니라 머릿속까지 정리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물리적인 정리는 곧 마음의 정리와도 닮아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쉽게 결정하고 버릴 수 있었던 물건도 있었지만, 오래 붙잡고 있었던 몇몇 물건은 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그것들이 나에게 더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과거에 머물러 있던 감정들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버리는 건 아쉬움이었지만, 동시에 현재를 살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물건을 놓는다는 건 공간을 비우는 일일 뿐만 아니라, 그 물건에 얽힌 감정과 기억도 놓아주는 일이었습니다.
다 정리한 후 서랍을 다시 닫을 때, 어깨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리는 단순한 정돈이 아닌, 나를 위한 해방이었습니다.
3. 서랍 정리가 마음 정리로 이어지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서랍을 다시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여유’였습니다. 이전처럼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던 공간이 깔끔하게 비워지자 마음까지 평온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서랍 하나 정리했을 뿐인데, 머릿속이 한결 가벼워졌고 생각도 또렷해졌습니다. 내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해졌고, 쌓아두었던 감정들도 함께 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정리는 단지 물건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왜 이걸 가지고 있었을까?’, ‘이 물건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같은 자문은 결국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물건을 정리하면서 저는 제 내면을 보고 있었고, 삶의 우선순위와 기준을 다시 설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불필요한 물건을 쌓아두는 대신, 자주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주변이 깔끔해지는 건 물론이고 마음도 덜 복잡해졌습니다. 서랍 속 혼란이 사라지자 일상에서 느끼던 압박감도 줄었습니다.
정리는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 내면의 혼란을 정돈하는 명상의 시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정돈된 서랍을 볼 때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이 들었고, 앞으로도 나를 위한 정리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졌습니다. 서랍 하나를 비우는 일은 작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었습니다.
정리하지 못한 서랍을 비운 일은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혼란을 정리하며 보이지 않던 감정들도 함께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건 하나를 놓는 것이 이렇게 큰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줄은 몰랐습니다. 정리란, 결국 나를 더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아주 개인적인 치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리는 과거를 내려놓고 현재를 살아가는 연습입니다. 서랍 하나가 바뀌면, 삶의 균형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합니다.